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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절반 크기로 인구 46만명..국민 87%, 정부 보건앱 등록

(자카르타=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 보르네오섬 북부 경기도 절반 크기의 브루나이에서는 50일 연속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브루나이, 50일 연속 코로나 신규 확진자 '0명' [AFP=연합뉴스]
브루나이, 50일 연속 코로나 신규 확진자 ‘0명’ [AFP=연합뉴스]

27일 브루나이 보건 당국에 따르면 브루나이의 확진자는 지난달 8일부터 전날까지 ‘0명’을 기록했다.

현재 브루나이 누적 확진자는 141명이다. 사망자는 총 3명이며, 나머지 확진자 138명은 모두 회복해 퇴원했다.

브루나이에서는 지난 3월 9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스리 페탈링 모스크의 부흥 집회에 다녀온 53세 남성이 처음으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

브루나이 당국은 이후 감염자가 급속히 늘자 같은 달 15일 출국 금지, 23일 입국 금지를 발표해 국경을 봉쇄하고, 모든 이슬람 사원과 기도원을 일시 폐쇄하는 등 적극적인 예방조치에 나섰다.

인구 87%가 브루나이 정부 보건앱 등록…건강상태 따라 5개 QR코드 분류 [말레이시아 보건부]
인구 87%가 브루나이 정부 보건앱 등록…건강상태 따라 5개 QR코드 분류 [말레이시아 보건부]

브루나이는 확진자 수가 더 늘지 않자 지난달 중순부터 식당·카페 등에 영업을 재개하되 발열 체크 등 보건지침을 철저히 준수하도록 했다. 또 이슬람 사원을 개방하되 사전예약을 하고 입장 전 개인정보가 담긴 QR코드를 찍도록 했다.

브루나이 전체 인구 46만명 중 87%(40만명)가 정부 보건앱(BruHealth)에 등록, 이슬람 사원 등 다중시설 이용 시 QR코드를 찍는 등 보건지침 준수를 철저히 하고 있다.

브루나이인들은 식당·카페, 푸드코트, 체육시설, 마트와 시장 등을 출입할 때는 QR코드를 반드시 찍어야 하며, 개인 건강 상태에 따라 QR코드 색깔이 다섯 가지로 분류돼 출입 허용 공간이 달라진다.

브루나이와 이웃한 말레이시아의 코로나19 확진자는 누적 8천606명, 인도네시아는 5만1천427명이다.

“위안부 강제연행 아냐·징계 부당”..’한국의 식민지 평가 잘못’ 반복
잡지 “한국사회의 이상한 실태”라며 한국어 소개도..혐한 조장에 악용

월간 '하나다' 트위터에 실린 류석춘 교수 기고문 홍보문 [트위터 계정 @HANADA_asuka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월간 ‘하나다’ 트위터에 실린 류석춘 교수 기고문 홍보문 [트위터 계정 @HANADA_asuka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강의 중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매춘부가 ‘비슷하다’고 발언해 징계를 받은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우익 성향의 일본 잡지에 기고문을 싣고 징계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 잡지는 류 교수 기고문을 한국어로도 인터넷에 소개하고서 “한국사회의 이상한 실태를 한국 사람들도 읽으면 좋겠다”고 홍보하는 등 기고문이 일본 내 ‘혐한'(嫌韓) 기류를 부채질하는데 악용되는 분위기다.

류 교수는 월간지 ‘하나다'(hanada) 8월호 기고문에서 자신의 수업 내용을 소개하며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 지배에 관한 한국 사회의 주된 평가가 잘못됐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류석춘 교수 학생 대책위원회 학생들이 2020년 1월 1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학생회관 앞에서 '류석춘 교수 규탄 릴레이 발언 및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류석춘 교수 학생 대책위원회 학생들이 2020년 1월 1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학생회관 앞에서 ‘류석춘 교수 규탄 릴레이 발언 및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예를 들면 “토지조사사업이 한국 사람들 소유 농지의 40%를 일본 사람이나 일본 국가에 약탈당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는 한국의 역사 교과서가 잘못된 것임을 설명했다. 토지조사사업은 기존의 소유권을 근대적인 방법으로 재확인하여 세금을 정확히 징수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고 썼다.

그는 “한국 쌀을 일본이 빼앗아 간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사 갔을 뿐이라는 설명도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류 교수는 또 “징용 간 사람들 대부분 역시 강제로 끌려간 것이 아니라, 돈 벌러 자원해 간 것임도 설명했다”며 일본 우익 세력과 닮은 주장을 내놓았다.

연세대 사회학과 류석춘 교수가 2019년 9월 30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본관에서 열린 인사위원회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의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TV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세대 사회학과 류석춘 교수가 2019년 9월 30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본관에서 열린 인사위원회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의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TV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한국의 젊은 여자들이 위안부로 나서게 된 것도 강제로 연행당한 결과가 아니라, 민간의 매춘업자에게 취업 사기를 당해서였다는 설명도 했다”고 덧붙였다.

류 교수는 성폭력이라는 비판을 받은 ‘궁금하면 한번 해볼래요’라는 발언이 “절대 ‘매춘을 해보라’는 발언이 아니다. ‘조사·연구를 해보라’는 발언일 뿐”이라고도 주장했다.

수업 당시 그는 “지금도 매춘에 들어가는 과정이 딱 그래요. 지금도 ‘여기 와서 일하면 절대 몸 파는 게 아니다’, ‘매너 좋은 손님한테 술만 팔면 된다’, ‘그런 거 한 시간에 얼마 한다’ 그렇게 해서 말하자면 접대부 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하다 보면 그렇게 되는 거예요.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옛날에만 그런 게 아니고”라며 이같이 언급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오늘날 성매매 종사자와 비슷하게 취급하는 류 교수의 주장은 위안부 피해자가 공개 증언한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2015년 4월 24일 일본 외국특파원협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2015년 4월 24일 일본 외국특파원협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예를 들어 피해자인 김복동(1926~2019) 할머니는 위안소 생활에 관해 “죽으려고 마음도 먹었으나 그러지는 못했고, 매를 맞지 않으려면 시키는 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2015년 4월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일본의 여러 사학자는 동원 당시 물리력 사용 여부를 기준으로 강제성 여부를 평가하거나 위안부 동원을 성매매로 간주하는 것은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역사학연구회 등 일본의 16개 역사 연구·교육 관련 단체가 2015년 5월 발표한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의 역사학회·역사교육자단체의 성명’은 “강제연행된 위안부의 존재는 그간의 많은 사료와 연구로 실증돼 왔다”고 밝혔다.

이들은 “강제연행은 억지로 끌고 가는 사례(인도네시아 스마랑, 중국 산시성에서 확인, 한반도에도 많은 증언 존재)에 한정돼야 할 것이 아니며, 본인의 의지에 어긋나는 연행 사례(한반도를 비롯한 넓은 지역에서 확인)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일본 학술단체인 역사학연구회 관계자 등이 2015년 5월 25일 오후 일본 도쿄도(東京都) 지요다(千代田)구 중의원 제2의원회관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왜곡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본 학술단체인 역사학연구회 관계자 등이 2015년 5월 25일 오후 일본 도쿄도(東京都) 지요다(千代田)구 중의원 제2의원회관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왜곡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아울러 “근래 몇 년간의 연구에서는 동원 과정의 강제성뿐만 아니라 동원된 여성들이 인권을 유린당한 성노예 상태에 놓여 있었던 것이 드러났다”며 “성매매 계약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배후에는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구조가 존재했으며 관련된 정치적·사회적 배경을 사상(捨象·떼어내 버림)하는 것은 문제의 전체상에서 눈을 돌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논평했다.

연세대는 류 교수의 강의 중 발언과 관련해 정직 1개월 처분을 내렸으나, 서울중앙지법은 류 교수가 징계 취소를 요구하며 연세대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징계의 효력을 정지한다고 결정했다.

 문제의 본질로 돌아가자. 어떤 접근이 위안부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위안부 문제’와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외교’는 왜 해결책이 될 수 없었나. 답은 지난 30년간 발전한 위안부 담론을 추적하면 찾을 수 있다.
본 기자는 그 답을 함께 찾기 위해 이번 기획기사를 준비했다.
운동·외교현안·연구분야·국제 여성 인권문제로서 위안부 담론이 발전한 과정을 파헤치고자 한다.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대표적 시민단체로는 한국정신대책협의회(정대협·지금의 정의기억연대)와 한국정신대연구소, 나눔의 집 등이 있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해결과 그 역사상의 중심에는 늘 정대협이 있었다. 정대협은 피해자 증언기록에서부터 배상촉구 운동 등까지 위안부 관련한 다수의 사회운동을 주도해왔다.

위안부 운동에서 정대협이 차지하는 몫이 크다는 건 양날의 칼이 될 수밖에 없다. 영향력이 큰만큼, 위안부 운동이 보여온 한계와 문제점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정대협(지금은 정의연)에 돌아가기 때문이다.

▶정대협 ‘7대 해결책’과 국제기구의 한계= 1990년 11월 설립된 정대협은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의 사실 인정, 공식 사과, 사실 규명, 책임자 처벌, 위령비 건립, 생존자와 유족에 대한 보상, 역사교육 등 ‘7대 해결책’ 원칙을 세우고 대대적인 사회운동을 벌였다. 정대협은 결성 직후부터 유엔 인권위원회로 나가 전시 성폭력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호소했다.

당시 정대협은 ‘한국인 위안부’가 아닌 ‘조선인 위안부’ 피해실태를 알리기 위해 북한과 긴밀하게 연대했다. 위안부 문제를 국제 여성인권 의제로 선점한 정대협은 이후 외연을 확장해 일본과 대만,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의 피해자 또는 시민단체와 연대해 정신대문제 아시아연대회의를 출범시켰다. 또, 1992년 유엔 인권위 산하 ‘소수민족차별 방지 및 보호에 관한 소위원회 및 현대형 노예제 실무회의’에서 위안부 실태를 알려 일본제국주의의 전시 성범죄 문제를 의제화했다.

그러나 국제기구는 7대 해결책을 풀 힘이 없었다. 법적 구속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1996년 라디카 쿠마라스와미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인권위원회 여성폭력문제 특별보고관은 보고서를 작성해 일본군 위안소 제도를 ‘전시 성노예제’로 규정했다. 쿠마라스와미 특별보고관은 일본이 전시 위안소제도에 대한 법적 배상과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당시 1970년부터 일본인 위안부들의 폭로와 고(故) 김학순 피해자의 기자회견, 그리고 요시미 요시아키 츄오대 교수가 공개한 일본 방위성의 위안소 운영실태 자료 등을 접한 일본사회도 큰 충격에 빠진 상태였다. 일본 여론도 악화된 덕분에 1993년 고노담화와 무라야마 담화가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정대협의 이른바 ‘7대 해결책’을 충족하지 않았다.

그나마 무라야마 도이치 일본 내각이 위안부 피해 여성들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진다는 의미로 일본 정부와 국민이 협력해 설립한 ‘아시아여성기금’을 통해 위로금을 전달하겠다고 했지만, 정대협은 기금을 ‘전쟁범죄 책임을 회피하고 왜곡하려는 부정한 조직’으로 규정했다.

▶‘7대 해결책’과 피해자들 간의 괴리= 정대협과 피해자 간의 갈등은 이 ‘7대 해결책’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 발생했다. 정대협의 해결책을 지지하는 위안부 피해자들도 많았다. 그러나 우선순위가 다른 피해자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게 기금을 수령한 피해자들의 모임인 ‘세계평화무궁화회’의 심미자 피해자였다. 기금을 수령하지 않은 피해자들과 수령한 피해자들 간의 갈등 틈 속에 정대협은 ‘한쪽’에 손을 들어줬다. 기금을 수령한 피해자들은 나눔의 집에서도 나와야 했다. 단체의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사진='위안부문제와 아시아여성기금' 디지털 기념관]
[사진=’위안부문제와 아시아여성기금’ 디지털 기념관]

갈라치기를 한 건 일본 아시아여성기금도 마찬가지였다. 기금 측은 필리핀에서 최초로 위안부 피해를 증언하고 기금을 수령한 롤라 로사 핸슨의 장례식장에 직접 방문하고 화한을 보냈다. 반면 기금 수령을 거부한 김학순 피해자의 장례식장에는 가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인권보호에 앞장 서야 할 정대협과 아시아여성기금이 정작 단체의 명분에 집착한 나머지 피해자들을 선택적으로 인정하고, 문제해결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았다. 피해는 고스란히 위안부 피해 당사자들에게 돌아갔고, 그 사이 대중사회는 위안부 문제를 잊어갔다.

▶피해자의 복합성 인지했던 정대협, ‘순결한 처녀’를 내세우다= 정대협활동이 외교영역에서 일본에 보다 공격적인 서사를 구사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다. 1997년 위안부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공론화되면서 백래시(반작용)의 일환으로 일본에서는 극우적 역사관이 태동했다. 오늘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정치적 기반이 되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회의’와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결성된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정대협 위안부 피해실태를 대내외적으로 보다 공론화하는 데에 주력했다. 특히, 박물관 건립사업에 힘을 실었다. 나눔의 집이 설립한 박물관도 있었지만, 정대협은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위원회’를 발족해 사업을 진행했다.

[헤럴드경제=이상섭 기자] 서울 마포구 '전쟁과 여성 인권박물관'의 담벼락에 '함께 외치는 평화'라는 문구의 이미지가 걸려 있다.
[헤럴드경제=이상섭 기자] 서울 마포구 ‘전쟁과 여성 인권박물관’의 담벼락에 ‘함께 외치는 평화’라는 문구의 이미지가 걸려 있다.

2012년 개관된 역사관은 정대협의 운동사를 강조하고, 소녀상과 특별전을 통해 ‘일본군에 끌려간 10대 소녀’ 이야기를 실어 강력한 메시지를 발신했다. 그러나 정대협의 공보전략은 위안부 피해의 다양한 면을 다루지 못하고 획일한 피해를 강요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박정애 당시 숙명여대 교수는 “여러 논의가 나올 수 있는 정대협의 활동을 정대협 스스로 박물관 안에 담아놓은 것이 조금은 낯뜨겁기도 하다”며 “민족주의적 독해와 강하게 연결돼 있는 소녀가 전면에 배치된 박물관은 상당히 당황스러웠다”고 지적했다.

정대협도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현재 정의연의 대표로 있는 이나영 교수는 “위안부를 상징하는 기표는 ‘종군위안부’, ‘정신대’, ‘강제연행된 성노예 혹은 조선 처녀’, ‘군위안부’, ‘피해생존자’, ‘할머니’등 다양하게 유동해왔다”며 “이는 운동의 입장을 정리하고 아젠다를 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학술지 ‘아세아연구’ 제53권 3호에 밝혔다. 일본 역사수정주의에 맞서 위안부 피해이미지를 극대화하는 ‘순결한 소녀’ 이미지는 우리사회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와 인식에 맞춰 운동성과를 거두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전략이었음을 내비친 것이다.

▶‘7대 해결책’과 외교의 한계, 그리고 소녀상= 위안부 피해자와 ‘순결한 소녀’를 연결시키는 이미징 작업은 위안부 소녀상 설치를 계기로 심화됐다. 2011년 정대협은 수요집회 1000회를 기념으로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소녀상(작은소녀 평화비)을 설치했다.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의 허가와 일본과의 협의 없이 소녀상을 설치하는 건 비엔나 협약위반이라고 반발했다.

일본 보수세력은 정대협 등이 일본의 사과 역사를 인정하지 않은 채 당국을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소녀상 문제를 외교현안으로 끌어올렸다. 정대협은 반발했고, 어느덧 위안부 운동은 ‘일본군 위안소 제도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인권보호’에 집중하지 않고 상징물로써의 소녀상 보호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소녀상 자체는 우리 여론과 국제사회에 강력한 메시지를 발신했다. 국제사회의 인권의식이 고양되면서 소녀상을 불편해하는 일본의 움직임을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외교의 영역’에서 소녀상은 또 하나의 의제로 전락했다. 일본이 위안부 협상조건 중 하나로 ‘소녀상의 이전’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양자 외교영역에서 위안부 문제를 풀려면 ‘절충’을 해야 한다. 하지만 정대협과 우리 사회에 있어서 위안부 문제는 일본과 절충점을 찾아서는 안되는 문제였다.

2007년 미 하원 본회의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유감표명과 사과를 하라는 결의안이 채택됐음에도 ‘폭발적인 압박’이 되지 못했다. 당시 한미일 3각 협력연대를 중시한 미국 정부는 한국과 일본의 입장 중 하나를 양자택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MB정부는 일본과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을 중단했다. 절충점을 찾을 수 없다면, 합의 자체를 맺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외교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정대협의 ‘7대 해결책’을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박 전 대통령은 일본을 향한 공격적인 서사를 구사했다. 한미일 정상회담 자리에서 아베 총리를 대놓고 무시하기도 했다. 이에 한미일 협력구도를 중시한 미국이 일본을 압박해 추가적인 사과와 배상을, 한국에는 외교적 절충을 압박했다. 결국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는 ‘소녀상’이 포함됐다.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사실 외교부는 소녀상의 이전을 정대협과의 논의하려면 ▷아베 총리 명의의 사과 ▷일본정부 예산에서의 10억 엔 갹출 ▷한일이 공동설립한 재단에서의 위안부 지원 및 기록사업 추진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그러나 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결과물은 그동안 박 전 대통령이 대대적으로 홍보해왔던 7대 해결책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정대협과 ‘위안부 굿즈’의 상업화…그리고 흔들린 대의= 2011년 이후 정대협은 ‘소녀상’을 넘어 위안부 피해를 ‘상징’할 수 있는 ‘굿즈’(상품·goods) 판매활동에 열을 올렸다. 이 과정에서 파생된 게 이른바 ‘사회공헌 기업’과의 협업관계다.

대표적인으로 2012년 설립된 사회적 공헌기업 ‘마리몬드’는 정대협의 후원하면서 상호 지지하는, 공생하는 상업모델을 구축했다. 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자 윤미향 전 정대협 대표는 제 1387차 수요집회에서 마리몬드 구매를 독려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2030 세대를 중심으로 사회적 신념을 반영한 소비를 의미하는 ‘미닝아웃’(Meaning out) 트렌드를 자극하는 긍정적 효과를 발휘했다.

기사를 작성한 본 기자도 일본군 위안부 미니 소녀상을 수집하기 좋아했다.
기사를 작성한 본 기자도 일본군 위안부 미니 소녀상을 수집하기 좋아했다.

그러나 부작용도 있었다. 이른바 소비중심의 위안부 운동은 대중으로 하여금 학술연구와 증언기록, 일본군 위안소의 진상규명 및 피해 당사자들에 대한 지원 등 위안부 문제에 포함돼 있는 다양한 분야의 활동을 ‘외면’하게 했다. 또, 다수의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위안부 상품구매가 ‘피해 당사자들’에게 사용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여기에 현 정의연이 마리몬드로부터 받은 기부금 17억 원 중 7억 8000여 만원을 국세청 공시에서 누락해 논란이 일파만파로 퍼졌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동상 제막식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제막된 동상을 어루만지고 있다. 동상은 당당한 모습으로 정면을 응시하며 손을 맞잡은 세 명의 소녀(한국, 중국, 필리핀)와 이들을 바라보는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모습을 실물 크기로 표현했다. 김학순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인물이다.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동상 제막식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제막된 동상을 어루만지고 있다. 동상은 당당한 모습으로 정면을 응시하며 손을 맞잡은 세 명의 소녀(한국, 중국, 필리핀)와 이들을 바라보는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모습을 실물 크기로 표현했다. 김학순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인물이다. 연합뉴스

지난 30년 간 정대협/정의연을 중심으로 전개된 위안부 운동은 전시 성범죄 문제를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 공론화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대협의 이른바 ‘7대 해결책’은 단기간 내에 이뤄낼 수 있는 사안들이 아니다.

정대협의 7대 해결책을 실현하는 게 우리들의 목표라면 위안부 피해 당사자들이 더 이상 생존하지 않는 시대가 올 때까지 여러 외교·국제정치적 장애를 점진적·장기적으로 뛰어넘는 전략을 고수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만큼 어렵다. 정대협은 ‘피해자들과 연대한 시민운동’으로 위안부 운동의 대표성을 확보해온 만큼, 이 한계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설명했어야 했다. 그러나 정대협은 피해자들에게 이러한 설명을 하는 대신, 단체가 반대하는 ‘대안’을 수용한 일부 피해 당사자들을 고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파워볼

이따금 ‘명분’이 앞선 나머지 일본군 위안소 제도의 역사 그자체를 다채롭게 파헤치기보다는 획일적인 피해 이미지를 내세우는 데에 급급하기도 했다. 위안부 상품 중심의 운동은 비영리단체로서 정대협의 정당성을 약화시켰다.

지난 30년의 위안부 운동과정에서 정대협이 띤 한계는 이제 새단장한 정의연이 뛰어넘어야 한다. 정의연이 위안부 피해당사자들과 재차 대화에 나서서 관계를 재정립하고, 지난 운동과정에서 일으킨 착오를 조정해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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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대전, 이상학 기자] 야구에 목마른 브랜든 반즈(34)가 한국에서 새로운 기회에 설렘을 감추지 않았다. 절실함을 가득 안고 한국에 온다.

한화는 지난 22일 제라드 호잉을 웨이버 공시하며 대체 선수로 메이저리그 출신 우타 외야수 반즈를 영입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서 개인훈련 중인 반즈는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다시 필드로 돌아갈 준비가 됐다. 새로운 기회에 흥분된다”며 “야구를 하고 싶어 못 견디겠다”고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미국 메이저리그가 7월말에야 뒤늦게 개막하는 가운데 마이너리그는 시즌이 사실상 취소됐다. 지난 1월 신시내티 레즈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던 반즈 같은 선수에겐 1년을 허비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달 초 호잉의 부진으로 대체 선수를 찾던 한화가 반즈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던 반즈는 신시내티 구단을 직접 설득해 FA로 풀려났다. 한화와 이렇다 할 협상 줄다리기도 없이 조건을 받아들여 계약을 완료했다.

그 결과 반즈는 계약금 5만 달러, 연봉 5만 달러, 옵션 10만 달러 등 총액 20만 달러에 계약했다. 보장 몸값은 1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억2000만원에 불과하다. 아직 시즌이 절반 이상 남은 시점에서 상당한 헐값이다. 이틀 먼저 키움과 계약한 ‘거물’ 에디슨 러셀이 53만8000달러에 계약한 것과 비교해도 반즈의 몸값은 대단히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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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리그 올스타 출신이자 월드시리즈 우승 멤버인 러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반즈도 그렇게 커리어가 떨어지는 선수도 아니다. 메이저리그 6시즌 통산 484경기를 뛰었다. 나이가 30대 중반으로 향하지만 지난해 트리플A에서 처음으로 30홈런 시즌도 보냈다.

한화 관계자는 “이 정도 몸값에 올 선수는 아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야구할 곳이 마땅치 않았던 반즈가 조건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협상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며 “이제는 나이도 있는 만큼 한국에서 잘해야만 하는 동기 부여가 되어있는 선수”라고 밝혔다.

현실적으로 빅리그 복귀가 쉽지 않은 반즈에겐 한국이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 두 딸을 두고 있는 반즈로선 꿈보다 현실을 바라봐야 할 시기. 올해 몸값은 적지만 남은 시즌 좋은 활약을 한다면 연봉이 수직 상승할 수 있다. KBO리그에 그런 사례가 꽤 있다.

지난 2018년 8월 제리 샌즈는 넥센(현 키움) 대체 선수로 오며 연봉과 인센티브 포함해 ‘단돈’ 10만 달러에 계약했다. 남은 시즌 활약을 발판삼아 50만 달러에 재계약했고, 올해는 일본 한신 타이거즈로 스카우트되며 110만 달러로 몸값이 뛰었다.파워볼실시간

지난해 5월 KIA와 총액 27만 달러에 계약한 프레스턴 터커도 복덩이 외인으로 거듭나며 85만 달러에 재계약했다. 몸값이 3배 이상 상승했다. 반즈도 남은 시즌 보장 몸값 1억원의 반란을 일으킨다면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

한편 반즈는 다음주 입국 후 2주 자가격리를 거쳐 7월 중순 선수단에 합류할 계획. 가족은 미국에 두고 혼자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한화 최원호 감독대행은 “올해 실전 경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격리 해제 후) 2군에서 1~2경기는 뛰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1군 합류까지) 한 달 정도 잡아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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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 고척=박수진 기자]

26일 키움전에 등판한 홍상삼. /사진=KIA 타이거즈 제공

홍상삼(30)이 향상된 탈삼진 능력을 앞세워 KIA 타이거즈를 위기에서 구해내고 있다. 가장 위험한 상황에서 강하다는 것이 기록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홍상삼은 26일 고척 키움전에 2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해 ⅔이닝 1탈삼진 1볼넷 무실점을 기록하며 시즌 3번째 홀드를 따냈다.
이날 홍상삼은 위기 상황에서 벤치의 선택을 받았다. 6-3으로 앞선 6회말 1사 2루 득점권 위기 상황에서 선발투수 드류 가뇽의 승계 주자를 물려받은 홍상삼은 폭투와 볼넷을 내주며 1사 1,3루로 몰리긴 했지만 다음 타자 이정후에게 1루수 땅볼을 유도한 뒤 박병호를 헛스윙 삼진 처리하며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로써 홍상삼은 이번 시즌 9경기에서 무려 17개의 탈삼진을 잡았다. 삼진율은 무려 44.7%이며 9이닝당 삼진은 18.36개다. 쉽게 말해 상대한 타자의 반 가까이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것이다.

홍상삼의 승계주자 실점율 역시 16.7%(6명 중 1실점)로 KIA 불펜 투수 가운데 가장 낮다. 필승조 투수 박준표(28)가 더 많은 승계주자(11명)를 물려받았지만 2번이나 홈을 밟게 하며 18.2%로 홍상삼에 이은 2위다.

이번 시즌 홍상삼의 투구 내용을 종합해보면 삼진 아니면 볼넷이다. 탈삼진은 17개고 볼넷은 8개다. 피안타율은 0.133으로 매우 낮다. 더구나 우타자와 좌타자를 가리지 않고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타자 상대 타율이 0.176이고 좌타자는 더 낮은 0.083이다.

“구속이 조금 더 오를 것 같다”고 말한 홍상삼의 말대로 평균 구속은 계속해서 빨라지고 있다. 시즌 초반 직구 평균 구속이 145km에 머물렀지만 26일엔 평균 구속이 148km가 찍혔다. 공이 빠르다 보니 타자들에게는 변화구가 더욱 까다롭게 느껴지고 있다. 볼넷만 조금만 더 줄인다면 홍상삼은 2012시즌 22홀드를 수확했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전망이다. 파워볼엔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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